노천명의 시 사슴 내용 분석
사슴
노천명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자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冠)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
물 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 내고는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 데 산을 바라본다.
노천명의 시 사슴은 사슴을 통해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외로운 삶을 그린 작품입니다. 노천명의 시에 많이 보이는 외로움이 여류 시인다운 섬세한 감각과 상상력을 통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여기 나오는 사슴은 보는 이의 감정이 투영된 동물입니다. 어쩌면 그것은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던 시인 노천명 자신의 외로운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노천명의 이름이 나오면 사람들이 이 작품을 연상하는 것도 아마 이런 데에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두 연으로만 구성된 단순한 구도의 이 작품은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라는 유명한 구절로 시작됩니다. 목이 긴 것과 슬픈 것과는 대체 어떤 관계가 있길래 시인은 이렇게 노래한 것일까요?
이런 물음에 논리적인 답변은 어렵지만, 우리는 긴 목이 어떤 고고함과 관계 있다는 데서 실마리를 풀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짐승은 목이 짧습니다. 그런 가운데 목이 길다는 사실은 그 자체가 남다른 모습이기에 홀로 외톨이가 되는 이유일 수도 있을 것이고, 목이 길기에 높이 세운 머리가 더욱 오만하고도 고고한 외로움을 지니게도 할 것입니다.
이러한 추축과 어울리게 사슴은 언제나 점잖은 편이어서 말이 없습니다. 그는 다른 동물들과 어울리지 않고 쓸쓸합니다. 노천명 시인은 이런 특성을 고려해 상상해 보면서 우아한 뿔을 관으로 표현하고 예전에 고귀한 족속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이 작품이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신의 고귀한 꿈을 지키며 외로이 살아가는 사람의 체험을 노래한 것임을 알게 됩니다. 사슴은 그것을 노래하기 위한 하나의 은유나 상징입니다. 그의 고고한 기품과 외로움은 한데 어울릴 수 없는 현실의 속된 모습에 대조되어 더욱 또렷해지고, 그에 비례해서 현실과의 거리는 더욱 커져만 갑니다. 그리하여 그는 현실의 세계보다 어떤 먼 이상의 세계를 그리워하면서 물 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는 자기애에 잠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 작품에서 우리는 끝내 외로이 자기만의 세계를 살아간 한 인물의 초상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